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문단 편집) == 창작 성향 == 생애 내내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에서 활동한 작곡가였기 때문에 당대 서방음악의 주류였던 무조음악이나 아방가르드 성향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은 서방 음악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했다는 것을 상기하자. 특히 스탈린 정권 시절에 서방 음악 스타일을 도입하는 행위는 쇼스타코비치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프로코피예프]], [[아람 하차투리안|하차투리안]],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카발레프스키]] 같은 소련 작곡가들에게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젊은 시절에는 나름 급진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이후에도 종종 아방가르드의 수법을 도입하거나 무조/음렬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의 음악은 조성의 기반 위에 있으며 대위법도 즐겨 사용하였다. 또한 선배 작곡가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에게는 소재를 긴축시켜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작곡법이나 '투쟁과 승리'의 도식을, [[모데스트 무소륵스키|무소륵스키]]에게서는 러시아 민속음악의 요소를 예술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구스타프 말러|말러]]에게서는 다채로운 관현악법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스트라빈스키]]로부터는 음의 중첩과 불협화음을 통해 역동적인 음향을 구현하는 법 등을 배운 것으로 여겨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작곡가로서는 존경하지만 그의 사상은 경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15년 선배인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프로코피예프]]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사이는 친밀하지 않았지만 그의 능력만큼은 높이 인정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선배들의 음악을 평면적으로 답습한 보수 성향의 작곡가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결코 20세기를 대표하는 대작곡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음악은 조성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유의 화성체계와 잦은 조바꿈 때문에 조성이 상당히 모호하게 느껴진다. 또한 주제를 강하게 비틀고 왜곡에 가깝게 과장하는 수법, 소음에 가까운 불협화음의 도입, 대위법이나 선법의 변칙적인 응용 등등의 특유의 작법을 통해 이전의 음악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쇼스타코비치만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어느 시기 할 것 없이 쇼스타코비치 음악에서는 공통적으로 톡 쏘는 듯한 신랄함과 예상을 깨는 아이러니함이 느껴지는데, 강약이나 속도의 극명한 대비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선율이나 리듬을 과감하게 병치시키는 등의 파격적인 수법을 통해 돌발성과 긴장감을 강화시키고 있는 덕분이다. 이와 같은 신랄함과 아이러니는 서방 세계의 악습이나 구태를 풍자하는 '선전용 작품' 뿐 아니라 교향곡이나 실내악 같은 절대음악 계통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다. 이것을 작품 끝까지 유지시키느냐, 아니면 진지하게 분위기를 바꾸느냐, 또 에너지를 실어가며 폭력적인 방향으로 변형시키느냐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가 크게 바뀐다. 한편으로는 군악대의 행진곡이나 서커스 음악 등에서 나타나는 통속적인 요소가 삽입되어 약간 '깨는' 느낌도 주는데, 혁명의 혼란기에 소년 시절을 보낸 작곡가로서 군악에 대한 인상이 꽤 깊었던 모양이다. 또 서커스 음악풍 요소도 작품에 밝은 색채 혹은 긴장감을 더하는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발레 같은 무용음악에서 이런 식의 작곡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한편으로 유태인에 대한 반감이 유럽을 휩쓸 때에도 과감하게 유태인들의 민속 음악을 자기 작품에 도입했으며 작품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왔던 초기와 후기에 주로 국한되지만 미국에서 건너온 [[블루스]]/[[재즈]]의 어법도 작품에 도입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다른 현대 작곡가의 음악에 비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좀더 친숙하고 인기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어떤 음악 어떤 사조를 도입하건 날 것 그대로가 아니라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상당히 해체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행진곡/서커스 음악이건 서구의 '이국적인' 작곡 기법이건 르네상스 시기의 코랄이건 일단 쇼스타코비치의 손에 들어가면 특유의 신랄함이나 아이러니가 더해져서 성격이 일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탈린 말년에 가면서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네 개의 음도 쇼스타코비치 애호가들의 눈길을 끄는 요소인데, 레-미b-도-시로 이루어진 이 음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이니셜이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쇼스타코비치의 이름을 쓰면 Dmitri Schostakowitsch인데, 레=D, 미b=S, 도=C, 시=H로 풀이할 수 있다(Dmitri SCHostakowitsch). 노보데비치 묘지의 쇼스타코비치 묘비에도 이 네 음이 새겨져 있다.] 교향곡 제10번을 시작으로 하여,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첼로 협주곡, 현악 4중주 제8번 등 내면적인 작품들에서 종종 눈에 띈다. 그는 현대 작곡가 중에서는 상당한 다작을 한 편에 속한다. 방대한 작품 수 만큼이나 그의 음악에 대한 논란도 많은데, 그가 세상을 떠난지 반세기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논란은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